추수감사절의 간략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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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의 간략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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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년 영국의 제임스 왕이 국교회를 반대하는 종교개혁자들을 박해하자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과 라이덴으로 도피하여 12년간 망명생활을 했으나, 만족할 만한 신앙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여 다시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브류스타의 지도를 가지고 1622년 11월 11일 102명(남자 78명, 여자 24명)이 '메이플라워’(May Flower)호를 타고 사선을 넘어 대서양 3400마일을 63일 만에 횡단하여 미국의 북쪽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 항구에 상륙하였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열정대로 열성적인 청교도교회인 교회를 세움으로 생명을 건 그들의 소원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미의 겨울은 몹시 추워 첫 겨울을 지내는 동안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노인과 어린이 53명이 죽고 49명만 살아남았습니다. 봄이 되었을 때,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가 씨앗을 주고 농사법을 가르쳐주어 황무지를 개간하여 씨앗을 뿌리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곡식이 익을 때까지 풀, 나무열매, 해초, 들짐승만으로 연명하였습니다. 그때 심한 가뭄까지 겹쳐 청교도들은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기도의 날'을 정하고 회개하며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심한 가뭄 가운데 열심히 기도한 청교도들의 그 기도가 응답된 엘리야의 기도가 되어 단비의 은혜로 해갈되었습니다. 이때 인디언 추장 호보목은 청교도인의 신앙의 모습을 보고 영국인의 하나님이 참 신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척자들의 첫 추수는 비록 채소와 곡식뿐이었으나 추위와 가뭄, 굶주림과 질병과 맹수의 사선을 넘는 귀한 열매였기 때문에 더욱 큰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청교도들은 그들이 첫 추수한 곡식과 채소를 하나님께 드리고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함께 즐거워하였습니다. 인디언들이 초청받았을 때 먹은 구운 칠면조 요리와 호박파이는 미국의 추수감사절의 요리가 되었습니다.

1789년 초대 대통령이 미국의 정식 추수감사절을 11월 26일로 선언하고 지켜왔고,  그 후 16대 링컨 대통령 때, 미국의 첫 여성기자이자 잡지 편집인인 사라 해일 여사가 1840년부터 20년간 추수감사절을 연례적인 행사로 지키자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링컨 대통령은 1864년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하였습니다. 1941년 루즈벨트 대통령과 미국 국회는 네 번째 목요일로 정하여 공포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토착화를 내세워 추석이 낀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교회도 있으나 대부분 미국 전통을 받아 11월 셋째 주일이나 둘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켜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형편에 따라 그 날짜를 바꾸어 지키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의 본 목적은 만물을 수확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한 해 동안에 축복 받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하는데 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도 이 감사절을 범 교회적으로 재정립해야 합니다. 선교의 유산물로 하나의 연중행사로 치러버릴 것이 아니라 교회가 지키는 감사의 축제로 재정립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신앙생활에 있어 믿음과 분리할 수 없는 예배의 근본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언제나 행동적 표현이며 축제이므로 이미 받고 있는 것과 받아서 존재하게 된 사실에 대해 되돌려 주고 드리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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