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생각하며
입추(立秋)에 들어섰고 처서(處暑)도 지나며 더위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뜨거운 햇볕은 여전하여 들녘의 곡식과 과일이 알알이 익어가고 저녁이면 서늘함이 도심의 거리를 어슬렁거립니다. 한 때는 폭력적인 더위와 함께 비도 바람도 그랬는데, 이제는 모두 다 잠잠해졌고 어느새 숨겨졌던 높고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을이 성큼 다가 온 것입니다.
가을을 노래했던 시인들의 마음을 갖고 싶습니다. 선배 목사님이 SNS에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제목은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입니다.
“길가에 차례 없이 어우러진 풀잎들 위에 새벽녘에 몰래 내린 이슬 따라 가을이 묻어왔습니다/ 선풍기를 돌려도 겨우 잠들 수 있었던 짧은 여름밤의 못 다한 이야기가 저리도 많은데/ 아침이면 창문을 닫아야 하는 선선한 바람 따라 가을이 묻어왔습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숨이 막히던 더위와 세상의 끝날 이라도 될 것 같던 그리도 쉼 없이 퍼붓던 소나기에/ 다시는 가을 같은 것은 없을 줄 알았는데 밤인 줄 모르고 처량하게 울어대는 가로수의 매미소리 따라 가을이 묻어왔습니다/ 상큼하게 높아진 하늘 따라 가을이 묻어왔습니다/ 열무김치에 된장찌개 넣어 비벼먹어도 행복한 그리운 사람이 함께 할 가을이면 좋겠습니다.”
가을은 낙엽과 과실의 계절입니다. 활발하고 왕성하게 자라났던 것을 멈추고 내실을 기하는 과정입니다. 푸르던 것이 붉게 변해가며 알곡과 열매를 익혀갑니다. 이제는 더 이상 부지런히 움직였던 탄소동화작용의 공장은 돌리지 않고 조용히 저장고에 하나씩 넣을 준비를 합니다. 얼마 더 지나면 그나마 남아있던 잎사귀가 고엽이 되어 떨어지며 자기의 소명을 마칠 것입니다. 그래서 가을을 떨어짐의 계절(fall)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떨어지는 것을 보고 쓸쓸해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퇴락을 보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과정이며 성숙과 새로운 창조를 위한 더 높은 차원을 위해서 자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평생 동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땀 흘리며 살아온 사람들이 가는 길은 바로 열매와 낙엽입니다.
가을은 섬김의 계절입니다. 일하며 키우고 채우고 남겼다면 이제는 나누고 베풀어야 할 시간입니다. 농사가 잘되면 좀 더 넉넉하게, 별로 작황이 좋지 않았으면 남겨진 것 가지고 소박하게 주어야 할 때입니다. 얼마 전에 교계 어른 한 분이 소천하셨습니다. 그 분은 가지고 있던 땅이 개발되면서 다른 목회자보다 현금 보유액이 넉넉한 편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하늘나라로 가시기 전까지 어떻게 소유를 나누고 섬길까하는 마음으로 퍼 주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3개 신학대학교의 후학들에게, 약한 농어촌교회에게, 가난한 원로목사님의 병원비를, 3개의 개척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절약과 절제의 달인이셨습니다. 정작 병원에 입원하실 때마다 6인 실에 계셨고 마지막 개인의 적금과 보험금까지 남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셨고 장례에 조의금을 받지 않도록 하셨다고 합니다.
가을철에는 여름에 땀 흘려 이룬 열매를 거두어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