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요청,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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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요청,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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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서 소통의 문제가 늘 대두되고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지시하고 명령 내리면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지면서 ‘상명하달’이 아니라 ‘상호소통’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심지어는 종교조직에서도 이런 소통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소통은 누군가의 신호(말이나 눈빛, 몸짓 등 각종 수단)가 발생하면서 시작됩니다. 즉, 다른 사람들이 누군가의 신호를 보고 듣고 나누는 과정입니다. 소통(Comm -unication)이라는 영어 단어가 "나누다, 전달하다, 참여하다, 공유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커뮤니카레(Communicare)"에서 유래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국 소통이라는 것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소통의 원리는 극단적인 생각을 갖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최고의 기업 컨설턴트였던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분법적 방식으로 사고한다. 강하거나 약하거나, 엄하거나, 너그럽거나, 이기거나 지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사고에는 근본적으로 결함이 내재한다. 원칙과 힘과 지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윈-윈(Win-Win)은 모든 사람을 위한 풍족한 패러다임에 기초하여, 누군가의 성공이 다른 사람의 성공을 가로막은 대가로 얻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밀고 나가는 것은 아무리 명분이나 목적이 좋아도 분열이나 저항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내가 사는 것보다 우리가 사는 것이 공동체가 가져야 할 목적입니다. 그래서 소통의 원리는 '1+1=2'의 단순 계산이 아니라 몇 배에 이르는 곱셈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소통의 전문가들은 이를 간단한 공식으로 “소통 = (솔직함 + 행동) × 상생”이라 설명합니다.

 

몇 년 전 미국의 윌로크릭 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가 내한하여서 교회 지도자들과의 만남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의 사역을 소개하였습니다. 그 중에 눈길을 끌었던 것은 수많은 교인들의 요구사항이 무엇인가를 교인의 수준에 따라 찾아서 접근하여 사역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그의 방법은 서구적인 합리적인 자세입니다마는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점을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교회가 가져야할 본래의 정체성과 방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시대적인 요청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역시 소통이 중요한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감람교회도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 지도자와 평신도, 세대 간에 소통이 보다 더 원활해야 할 것입니다.

 

소통의 전문가인 플렛 데일은 “소통도 외국어 회화나  피아노처럼 배워야 하는 또 하나의 기술”이라고 말하였습 니다. 노력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과 결단만 가지고 안 될 때에는 먼저 주님께 원활한 소통을 위해 기도하는 일도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갈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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